암, 죽을 병이 아닌 살 병으로 (주님의 섭리)
서울후원회 | 장철용 바오로
감히 “주님, 안 됩니다.”라고 매달려 봅니다. 내 나이 벌써 여든여섯. ‘내가 지금까지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며 살았는가? 한평생 허덕이며 살며 남은 것이 무엇인가?’ 평소 가끔 뇌까리던 말입니다.
그러던 어느 날,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. 그것도 회생이 어렵다는 4기 말기였습니다. 서둘러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자녀들이 놀라 병원을 찾았으나, 보통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. 어쩔 수 없이 수소문 끝에 김포의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, 그곳에선 자신이 없으니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. 마치 수술 연습을 한 것인가 싶은 마음조차 들었습니다. 결국 둘째 딸이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겨우 큰 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.
그 이후로도 암은 네 번이나 재발했습니다.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. 살아오며 주님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 애써 떠올려 보았지만,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. 성당 일을 한다고 몸을 움직인 적은 있지만, 돌이켜보니 모두 피동적인 일이었습니다. 스스로 우러나서 한 능동적인 일은 찾기 어려웠습니다. ‘내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? 세세대대 하느님을 섬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?’
그때 제 마음속에 “오, 찬란한 태양 주님이 지으셨네.”라는 가사가 스쳐 지나갔습니다.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.
오래전, 서울 퇴계로 도로 끝 허름한 2층 건물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던 분들이 계셨습니다. 어느 날 그곳 2층 마룻바닥에 열대여섯 살 된 소년 스무 명 남짓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습니다. 잠시 후 키 큰 분이 들어오더니 한 소년에게 노래를 시켰습니다.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인 채 노래를 시작했습니다.
“은빛 달이 나뭇새로 흘러내린 밤, 다 무너진 옛 성터 주춧돌 밑에 집 없는 귀뚜라미 슬피 우는 밤, 집 없는 귀뚜라미 슬피 우는 밤…….”
소년은 노래를 마친 뒤에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고, 노래를 시킨 이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. 잠시 후, 인자한 미소를 띤 ‘김 선생님’이라는 분이 올라오셨습니다.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존경의 시선으로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. 곧 사회로 나가 자립해야 할 소년들에게 선생님은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.
“여러분, 부모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은 이제 멀리 던져버리세요. 여러분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을 가졌으니, 이제부터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립정신을 키워야 합니다. 저 앞의 남산 소나무가 보입니까? 저 나무가 처음부터 저렇게 컸을까요? 아닙니다. 작은 묘목일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자랐기에 오늘날의 큰 나무가 된 것입니다. 기둥이 되고 들보가 되어 제 역할을 다하기까지 나무는 멈추지 않습니다. 여러분도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태어났습니다. 노래, 운동, 공부 등 자신의 특기를 살려 신용을 얻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.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일을 합니다. 일하는 것은 삶의 의미이며, 선을 행하는 것은 삶의 목적입니다.”
소년들의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. 그 말씀이 제 귓가에도 쟁쟁했습니다.
“일하는 것은 삶의 의미이며, 선을 행하는 것은 삶의 목적이다.”
그 말씀을 되새기며 제가 찾아낸 소명은 바로 ‘성전 건립’이었습니다. 나는 비록 늙어 사라지겠지만, 성전은 다음 세대,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며 주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. 교구청을 찾아가 수소문한 끝에, 어느 성지에 순교자의 피가 스며든 땅 위에 성전을 건립하려 하시는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. 그 뜻이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, 저는 후원 제1호가 되어 준공 미사가 봉헌될 때까지 목적했던 기부를 모두 마쳤습니다.
다음으로 실천하고자 한 것은 “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”는 말씀이었습니다. 그런데 몸에 이상 징후가 느껴지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. 주님께 감히 “이 일을 마칠 때까지는 저를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!”라고 연달아 기도했습니다. 신기하게도 잠자던 투자금이 짧은 시간에 불어나 5억 원이 넘는 큰돈이 되었습니다.
어디에 이 돈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중, “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”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.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서 목숨 걸고 선교하시는 외방선교회와 외방선교수녀회를 후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. 주님께서 요긴하게 쓰실 때를 위해 이 돈을 키워주셨음을 의심치 않습니다.
참으로 제가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, 이토록 서둘러 실천에 옮겼겠습니까? 암은 분명 죽을 병이지만,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나니 이제는 저를 살게 하는 ‘살 병’으로 바뀌었습니다. 암 덕분에 말씀을 실천하고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, “하하” 하고 절로 웃음이 납니다.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.
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사랑의 하느님,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으소서. 아멘.









